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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대사전 제9편|19세기 와인의 위기와 근대화

철도와 증기선이 와인을 더 먼 시장으로 실어 나르기 시작한 19세기, 유럽의 포도밭은 대서양을 건너온 병해와 해충에 차례로 흔들렸습니다. 와인 소비가 늘고 샴페인 하우스와 보르도 샤토가 브랜드와 명성을 쌓는 동안, 필록세라는 프랑스와 유럽의 포도밭을 무너뜨렸습니다. 그 위기는 미국산 포도나무 대목에 유럽 품종을 접붙이는 새로운 재배 방식으로 이어졌고, 와인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연구와 성분·산지를 둘러싼 규제도 함께 발전했습니다.그래서 19세기의 와인 역사는 한 가지 발명이나 한 사람의 업적으로 요약하기 어렵습니다. 시장을 넓힌 교통망, 소비자에게 품질을 알린 상표와 분류, 포도밭을 되살린 농업 연구, 와인의 이름과 성분을 둘러싼 생산자와 상인의 이해가 함께 얽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

와인 대사전 제8편|근세 유럽의 와인: 관세, 네덜란드 상인, 포트와인의 부상

중세 유럽의 와인 교역이 도시와 항구를 중심으로 성장했다면, 근세에는 국가 간 경쟁과 세금 정책이 와인의 이동 경로를 더욱 크게 바꾸었습니다. 전쟁과 무역 협정은 어느 나라의 와인이 더 유리한 조건으로 시장에 들어갈지를 결정했고, 항구도시와 상인들은 국가의 규칙을 활용해 새로운 교역망을 만들었습니다.이 시기의 변화는 보르도와 네덜란드의 관계, 영국과 포르투갈의 무역에서 잘 드러납니다. 17세기 보르도 와인의 주요 구매자 가운데 하나는 네덜란드 상인이었고, 1703년 영국과 포르투갈이 맺은 메서언 조약은 포르투갈 와인에 유리한 관세 조건을 마련했습니다. 포트와인과 마데이라 와인은 이런 장거리 무역 환경 속에서 새로운 시장을 넓혀갔습니다.운송과 저장 방식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와인은 여전히 통에 담겨 배..

와인 대사전 제7편|중세 유럽의 와인 교역: 보르도에서 영국까지

중세 유럽에서 와인은 수도원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포도밭에서 생산된 와인은 강과 항구를 따라 도시로 이동했고, 상인과 선박을 거쳐 먼 시장에 도착했습니다. 와인의 생산과 소비가 커지면서 도시에는 판매 규칙과 세금, 운송 특권이 생겼고, 일부 항구도시는 와인 교역을 바탕으로 성장했습니다.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가 보르도와 영국의 교역입니다. 중세 후기에 가스코뉴 와인은 영국 시장에서 중요한 상품이 되었고, 이 무역은 왕권과 관세, 도시 상인들의 이해관계와 얽혔습니다. 다만 “영국이 보르도 와인을 즐겨 마셨다”는 설명만으로는 당시의 무역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제도가 수출을 뒷받침했는지, 전쟁과 세금이 거래를 어떻게 바꿨는지, 다른 유럽 도시에서도 와인이 어떻게 유통됐는지 함께 살펴볼 필요..

와인 대사전 제6편|로마 이후 수도원과 유럽 와인의 재편

서기 5세기 서로마 제국의 정치 질서가 무너졌다고 해서 유럽의 포도밭과 와인 문화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도시와 교역망은 큰 변화를 겪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인구와 생산이 줄거나 농업의 중심이 이동했습니다. 반면 옛 로마 영토 곳곳에서는 포도 재배가 이어졌으며, 교회와 수도원은 와인을 종교 의례와 식생활, 토지 운영에 연결했습니다.이 시기를 설명할 때 흔히 “로마가 와인을 만들었고, 수도사들이 그 전통을 보존했다”고 요약합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실제보다 단순합니다. 수도원은 와인을 보관하는 기관에 그치지 않고 토지를 소유하고 운영한 경제 주체였습니다. 포도밭을 관리하고, 생산물을 소비하거나 판매했으며, 기증받은 땅과 노동력을 활용했습니다. 동시에 포도 재배는 수도원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세..

와인 대사전 제5편|로마의 포도밭은 어떻게 갈리아와 이베리아로 퍼졌을까

로마가 지중해를 지배하면서 와인도 제국의 길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생산한 와인이 갈리아와 이베리아, 군사 주둔지와 도시로 운반됐고, 로마의 식탁과 시장은 새로운 소비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와인사를 단순히 “정복과 함께 포도밭이 북쪽으로 퍼졌다”고만 설명하면 중요한 변화 하나를 놓치게 됩니다.로마가 들여온 와인을 소비하던 지역은 시간이 흐르면서 직접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현지의 농업 지식과 토양, 기후, 강과 도로, 목재 자원이 생산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그 결과 갈리아 남부에서는 전문적인 포도 재배와 암포라 생산이 발달했고, 북쪽 지역에서는 지중해식 항아리 대신 나무통이 와인 운송에 널리 쓰였습니다.이번 편에서는 로마의 와인 문화가 갈리아와 이베리아를 비롯한 ..

위클리 드링크 리포트 VOL.07|엇갈린 주류 시장, 달라지는 바의 선택

2026년 10월 셋째 주 · 10월 12~17일 발표·보도 및 행사 일정 기준안녕하세요. 베니입니다.이번 주 주류업계에서는 같은 회사의 실적 안에서도 시장별 차이가 선명하게 나타났습니다. 페르노리카는 미국과 중국에서 매출이 감소했지만 인도에서는 성장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캐머런브리지 증류소의 예정된 파업이 중단되며 협상이 이어지게 됐습니다.바 현장으로 시선을 옮기면 또 다른 질문이 보입니다. 토닉을 바꾸는 것만으로 한 잔의 개성을 얼마나 달리할 수 있을까요? 해외 전문가는 한국 술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있을까요? 바텐더에게 필요한 교육은 어디까지 확장되어야 할까요?이번 위클리 드링크 리포트에서는 여섯 가지 소식을 통해 주류 시장의 변화와 바에서 생각해 볼 지점을 함께 살펴봅니다. 기업 실적, 공식 발..

와인 대사전 제4편|고대 로마의 와인: 포도밭에서 제국의 시장까지

고대 로마는 와인을 처음 만든 문명이 아니었습니다. 로마가 성장하기 전부터 이탈리아와 지중해에는 포도 재배와 와인 교역이 존재했습니다. 로마의 역사적 의미는 그보다 다른 데 있습니다. 포도 재배와 양조, 저장과 운송을 농장 경제와 도시의 소비, 제국의 교역망 속에 연결했다는 점입니다.로마의 와인은 농민의 일상적인 음료이면서 부유층의 사치품이었고, 제사와 의학, 식탁과 시장을 오갔습니다. 오늘날에도 익숙한 포도밭과 저장고, 운송 용기의 흔적은 로마인들이 와인을 어떻게 생산하고 유통했는지 보여줍니다. 하지만 문헌은 대체로 지주와 엘리트의 관점에서 쓰였고, 고고학 자료만으로는 와인의 실제 맛이나 소비량을 완전히 복원하기 어렵습니다.이번 글에서는 로마가 와인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부터 포도 재배와 농장 양조..

와인 대사전 제3편|고대 그리스의 와인: 디오니소스와 심포지온, 그리고 물과 섞어 마신 술

와인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고대 그리스는 중요한 갈림길로 등장합니다. 와인을 처음 만든 곳은 아니지만, 포도주를 신화와 제의, 정치와 사교, 시와 철학의 언어로 풀어낸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인에게 와인은 농산물이자 교역품이었고, 신 디오니소스의 선물이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음료였습니다.그렇다고 고대 그리스의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와인을 마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심포지온(symposion)은 주로 고전기 아테네의 엘리트 남성들이 식사 뒤에 모여 술과 대화를 나누던 자리입니다. 이 풍경을 그리스 사회 전체의 일상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남아 있는 문헌과 그림 자료도 특정 시대와 계층의 시선을 강하게 반영합니다.이번 글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포도 재배와 양조, 와인과 디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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