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의 선상 또는 해적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나 소설에서는 빈번하게 럼이 등장합니다. 그만큼 럼은 바다 사람들의 술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실제로도 그러하였습니다.
이 포스팅에서는 럼이 어떻게 선상에서 널리 퍼지게 되었는지와 바다와 럼이 만들어낸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삼각무역 (Triangular Trade)
삼각무역(Triangular Trade)은 럼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이 무역의 시작은 15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프란시스 드레이크 경의 사촌인 존 호킨스 경은 영국으로서는 최초로 아프리카 노예 무역의 시작을 알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무역을 통한 이익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세 번의 항해를 진행하였습니다.
최초의 삼각 무역은 영국의 천, 모피 등의 상품을 아프리카 흑인 노예와 거래한 후 중간 항로를 거쳐 흑인 노예들을 판매하여 이익을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뉴잉글랜드의 양조장의 럼이 큰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상품으로 떠오르면서 이 무역 시스템은 한차례 변형되었습니다. 뉴잉글랜드인들은 생선, 고래 기름, 모피, 럼과 같은 상품들을 수출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역은 아래의 과정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 럼을 제조하여 아프리카로 이동하여 노예와 거래
- 노예를 중간 항로에서 돈과 당밀로 거래
- 당밀을 뉴잉글랜드로 가져가 다시 럼을 제조
이 항로를 정리하면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마지막으로 다시 유럽으로 돌아오는 3가지의 과정이었습니다. 이를 선으로 연결하면 삼각형 모양의 항로가 만들어진다 하여 이 무역의 순환을 삼각무역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삼각무역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진 시기는 1700년에서 1808년 사이로 전체 노예 인구의 2/3이 아메리카로 팔려나갔습니다.
선원들의 식수, 럼
13세기 이후부터 발전을 거듭한 항해 기술에 의해 원양으로의 이동이 이루어진 후, 선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바로 ‘식수 공급’이었습니다.
그 당시 식수 공급의 유일한 방법은 항해 중 만난 비를 통에 받아 보관하여 마시는 방법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보관 과정에서 금세 상하게 되어 마실 수 없게 되는 일이 허다하였죠. 상한 식수는 선원들에게 질병을 일으키고, 위험한 경우 생명을 잃기도 할 만큼 그 방법은 몹시 위험하고 실용적이지 않았습니다.
빗물을 저장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 선장들은 대안으로 술을 식수로 사용하였습니다.
술의 재료 중에는 물이 사용되었습니다. 알코올 농도가 높을수록 높은 보존력을 가질 수 있었죠. 실제로 당시 해상무역의 주역. 한자동맹에서는 물과 와인, 맥주를 식수로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더 멀고, 더 험한 항해를 하는 과정에서 한계를 드러내게 되는데, 유럽보다 온도와 습도가 높은 대서양과 카리브해를 지나면서 금방 술이 상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고자 더욱 도수가 높은 위스키와 같은 술을 식수 대용으로 사용하였지만 부유층이나 권력층이 아닌 일반 선원들에게 제공되기에는 가격대가 터무니없이 높았습니다. 그리하여 그에 비해 저렴하고 알코올 농도가 높은 럼이 선원들의 식수가 된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당시 선장들이 선원들에게 내리는 가장 큰 형벌 중 하나가 바로 금주였습니다. 물을 구할 수도 없는 곳에서 식수 공급 자체를 없애버리는 형벌을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하게 됩니다. 선원들이 술에 취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었던 것이죠. 그 당시 해군 보급용 진과 럼은 일반적으로 소비되는 것에 비해 도수가 높은 편에 속했습니다. 때문에 이를 네이비 스트렝스 (Navy Strength)라 부르게 되었고, 현재에도 이 수준의 알코올 함량을 지닌 럼에 Navy Strength를 붙여 만들기도 합니다.
핫 그로그 (Hot Grog)와 그로기 (Groggy)
영국 해군은 장교를 제외한 준사관 이하 20세 이상의 승조원들에 한해하루에 0.5 파인트 (260cc ~ 280cc)씩 점심과 저녁 2회에 걸쳐 배급하였습니다. 이것의 가장 큰 문제는 도수가 높은 럼으로 인해 병사들이 쉽게 취해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사들이 늘 술에 취해 있는 것에 고위층의 불만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배급을 하지 않으면 술로 인한 선상 반란과 갈등과 같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해군 제독 에드워드 버논(Admiral Edward Vernon)은 럼을 물에 희석시켜 배급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럼의 맛이 훼손되게끔 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레몬과 라임주스, 설탕 등을 섞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그로그(Grog)라는 칵테일이 되었습니다.
버논 제독이 항상 착용하던 방수 망토(Grogram)에서 유래되어 나온 이 이름은 그로그를 마시고 몸을 가눌 수 없이 취한 사람들과 권투에서 대미지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의 선수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그로기(Groggy)라는 단어를 탄생시키게 되었습니다.
넬슨의 피
럼의 또 다른 별칭으로 ‘넬슨의(Nelson’s Blood)’가 있는데, 이 또한 영국 해군에서 있었던 전해지는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전설의 주인공인 허레이쇼 넬슨 (Horatio Nelson) 제독은 나일 해전, 트라팔가 해전 등에서 큰 승리를 거둔 영국의 명제독이었습니다. 트라팔가 해전에서 넬슨 제독이 전사하자, 병사들은 시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럼 통에 제독의 시신을 담아 영국까지 돌아가게 됩니다. 넬슨의 기함이었던 빅토리아 호의 병사들은 럼을 마시고 싶어 넬슨 제독의 시체가 담겨있는 통에 작은 구멍을 내어 마시게 되었습니다. 영국에 도착하여 확인하였을 때 오크통에 담겨있던 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제독의 시체만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영국인들 사이에서 럼, 그중에서도 다크 럼은 ‘넬슨의 피’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사실일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참고자료
SPIRIT (조엘 해리슨, 닐 리블리 지음. 한스미디어. 2018)
위키피디아 (https://www.wikipedia.org/)
ThoughtCo. (https://www.thoughtco.com/triangle-trade-104592)
the New Stateman (https://www.newstatesman.com/culture/2021/08/cruel-history-rum-and-why-we-drink-forget-it)
Southern Boating (https://southernboating.com/food/drinks/brief-history-of-rum-at-sea/)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lifeandstyle/2015/apr/17/rum-drink-history-how-grog-got-its-name-empire-of-drinks-henry-jeffre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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